나의 글

마음의 여유

Abigail Abigail 2023. 5. 31. 16:50

마음의 여유

 

“덕수궁 박물관에 청자(靑瓷) 연적(硯滴)이 하나 있었다. 내가 본 그 연적은 연꽃 모양을 한 것으로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整然)히 달려 있었는데, 다만 그중에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졌었다. 이 균형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은 파격(破格)이 수필(隨筆)인가 한다. 한 조각 연꽃잎을 꼬부라지게 하기에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피천득, ‘수필(隨筆)’에서).

 

수필을 잘 쓰려면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세상일들을 바라보는 느긋하고 넓고 깊은 안목이 필요하듯이 우리가 인생길에서 오류를 범하지 않고 인간다운 모습으로 살아가려면 평소에 매사에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대응해 나갈 수가 있어야 한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외부로부터 다가오는 모든 말이나 자극들에 편벽(偏僻)되지 아니하고 모두에게 덕(德)이 되는 방향, 정의로운 방향으로 반응하여 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여유로운 마음은 균형속의 파격을 아름다운 조화의 멋으로 승화시킬 수는 능력을 우리에게 부여한다. 여유를 잃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마침 기름칠 하지 않은 기계가 돌아가는 것과 같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여유로운 마음을 품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이를 위해서는 세상만사가 돌아가는 가장 높은 차원의 원리, 자연의 이치, 하나님의 섭리(攝理) 한마디로 진리를 터득하여야 한다고 본다. 이렇게 진리를 터득한 가장 높은 차원의 안목을 지니고 세상의 일들을 바라보는 능력을 갖추면 눈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를 알 수가 있으니 조급하고 답답하기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느긋하게 마음의 여유를 품고 눈앞의 일들에 대응하면서 인생의 보람을 얻고 마음의 즐거움도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급기야 영혼의 평안과 기쁨을 얻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니, 우리 인생길에 더 이상의 축복은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하직하면서 초조하지 않고 여유 있게 미소를 머금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떠나갈 수가 있을 것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장 32절).

 

그러면 이 진리를 우리는 어디에서 일 수 있을 것인가?

 

세상의 모든 종교와 철학들은 나름 어려움이나 문제 또는 한계가 있으며 무엇보다 이것을 악용하여 사람들을 꾀어 들여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는 자들이 세상에 넘쳐나니 참으로 우리 주변의 말들을 주의하여 받아드려야 한다.

 

결국 진리를 터득하는 일은 모두가 나 자신이 어찌하느냐에 달려있다. 노암 촘스키(Noam Chomsky)는 말하기를 “누구도 진리를 그대의 머릿속에 집어 넣어주지 않는다. 진리는 다만 그대 스스로가 그대의 힘으로 찾아 내야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율곡 이이 선생은 “뜻을 세우는 것과 밝게 아는 것과 독실하게 행하는 것 모두가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지지립 지지명 행지독 개재아이(志之立 知之明 行之篤 皆在我耳)]”라고 그의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 말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진리로 나아기는 길은 인류역사에 불멸의 경전(經典)과 성현(聖賢)들의 말씀을 두루 섭렵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인화가(文人畵家)인 능호관 이인상 선생은 그의 모루명(茅樓銘)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는데, 그의 작품들에는 이러한 그의 고고한 기상과 인품이 잘 드러나 있고 이것이 그가 최고의 문인화가로 평가되는 이유일 것이다.

 

작은 누정(樓亭)에 나를 담으니,

고요히 지내면서 명문(銘文)을 짓는다.

문장은 실(實)함에서 들뜨지 않고

행실은 명예를 좇지 않는다.

말과 행동은 속됨에 들지 않고

독서는 경전(經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담담함으로 벗을 얻고

옛 것을 스승으로 삼는다.

실천하매 천명(天命)을 어기지 않으니

자나 깨나 맑음 뿐이로다.

 

<능호관 이인상 선생이 자신의 ‘종강모루(鐘岡茅樓)’에 부친 모루명(茅樓銘)>

 

2023. 6. 1. 素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