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동하는 새 삶의 소망을
생동하는 새 삶의 소망을
4세기 동방교회의 명설교가였던 요한 크리소스톰은 사회악을 꾸짖고 황후 유독시아의 사치를 나무라다가 위협을 당하여 귀양살이를 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태연히 말했다. “내가 무엇을 두려워할까? 죽음인가? 아니다. 나의 생명은 그리스도께 감추어져있다. 내가 사는 땅에서 쫓겨나는 것인가? 아니다.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다. 나의 소유를 잃는 것인가? 아니다. 나의 보화는 하늘에 감추어져있다.”
“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 넷째 해에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예레미야가 불러 주는 대로 이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니라. 그 때에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바룩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네가 일찍이 말하기를 화로다 여호와께서 나의 고통에 슬픔을 더하셨으니 나는 나의 탄식으로 피곤하여 평안을 찾지 못하도다. 너는 그에게 이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나는 내가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내가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 온 땅에 그리하겠거늘 네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 재난을 내리리라 그러나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45장 1∼5절).
예레미야가 여기서 선포하는 예언의 배경은,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유대인들이 이곳저곳으로 흩어진 후에, ‘바룩’이라는 사람이 앞으로 되어 질 일을 기록하면서 고민하고 있을 때의 상황이다. 바룩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는 서기관으로 유다의 멸망과 민족의 멸망을 예고하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낭독해야 했다. 그런데 이 일은 바룩에게 몹시도 힘든 일이기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때 하나님께서 바룩에게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 재난을 내리리라. 그러나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 하리라(5절).” 유다와 민족의 멸망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일로 왕과 백성들로부터 많은 박해와 반역이 있을지라도 생명을 보호하고 지켜주겠다고 약속하심으로 바룩을 위로하시고 용기를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바룩에게 주신 약속을 우리에게도 주신다. 괴로운 순간, 앞일이 두려운 순간, 고난의 순간, 우리를 늘 보호하시고 붙들어주신다. 언제나 하나님을 믿고 나가는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다.
생떽쥐베리는 『어린 왕자』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백만 송이의 장미가 있어도 자신이 물을 주고 사랑하며 키운 한 송이의 장미와 비교할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물을 주신 정도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까지 아낌없이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내어주신 분이다. 우리를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도록 사랑하신다. 그럼으로, 이렇게 놀라운 사랑을 받아 누리는 우리들은 힘들고 괴로워도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며 용기와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새싹 움트는 삼청공원(三淸公園)에서 (2006. 3.22)
긴 겨울날의 차디찬 시련을 딛고
더 성숙함의 표출이듯
새싹들이 움트는 풍경은 신비하다.
해맑은 양지, 신선한 봄바람 어울리고
실개천 물 흐름소리 더불어 울리니,
새로운 생명의 세계로 열리어 간다.
죄와 죽음의 그림자로 물든 속세를 넘어
하나님의 은총, 자연 속 새 생명의 고동(鼓動)을 들으며
내면에서 생동하는 새 삶의 소망을 다짐한다.
긴 세월 돌고 돌아온 허망함!
희망과 절망, 영광과 오욕, 도전과 좌절들은
부질없는 허상인 것을 본다.
이젠 귀밑머리 하얗게 센 반백의 여정인데
하나님은 새 생명 약동하는 삶의 세계를 보이시니,
이것이 넘치는 기쁨이 아니겠는가!
2023. 3. 8. 素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