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지동설 입증 (이민철 선생)

Abigail Abigail 2022. 10. 23. 04:04
지동설 입증 (이민철 선생)
이민철 선생: 조선 후기의 문신·과학자. 1664년 왕명으로 측우기와 혼천의를 제작, 혼천의 속에 회전 지구의를 넣어 지동설을 입증했다. 또한 수차 제조의 명을 받고 이를 만들어 관개에 이용하였다.
본문
본관 전주(全州). 1646년(인조 24) 아버지가 민회빈강씨(愍懷嬪姜氏)를 변호하다 진도(珍島)에 유배될 때 따라가 아버지(백강 이경여 선생)의 지도로 천의기(天儀器)를 조립하고, 1650년(효종 1) 아버지가 풀려날 때까지 과학기술을 배웠다. 음보(蔭補)로 주부(主簿) 등을 거쳐 영월군수(寧越郡守)가 되었다. 1664년(현종 5) 왕명으로 측우기(測雨器)와 혼천의(渾天儀)를 제작, 혼천의 속에 회전 지구의(地球儀)를 넣어 지동설(地動說)을 입증했다.
1669년(현종 10) 감찰(監察) ·교리(校理) 등을 거쳐 1678년(숙종 4) 광주목사(光州牧使)가 되고 그해 병으로 물러났다. 이듬해 수차(水車) 제조의 명을 받고 이를 만들어 관개(灌漑)에 이용하였다. 1687년(숙종 13) 최석정(崔錫鼎)의 건의로 선기옥형(璿璣玉衡:해시계)의 제작을 시작하자 책임자로 선발되어 2년 만에 이를 완성했다. 그 외에 대나무로 만든 물시계도 발명했다.
이민철은 조선 현종 숙종조 대표적인 천문과학자로 세종대왕 후궁인 신빈 김씨의 3남 밀성군의 후손으로ㅜ조선 최고의 명문가 태생이다. 영의정 지낸 백강 이경여 선생의 서자이다
세종대왕 이후 천문관측 기구의 전통을 계승 발전 시켜 조선의 천문학 발달에 크게 공헌한 인물중 한 사람이다
임진 정유왜란과 정묘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불에 타 유실된 것을 당시 복원 시켜 대궐에 설치 해 놓았는데 너무나 조잡하여 보는 사람들이 민망할 정도였다. 이에 왕명으로 이민철등이 정교하게 복원 시켰다
이민철은 어려서 부친 이 경여가 소현세자빈 즉 강회빈을 인조대왕이 사사 시키려 할 때 극력 반대하여 진도로 귀양 가게 되었을 때
따라가 몇년 동안 머물며 기술을 습득 하였다
그 후 효종대왕이 보위에 오르자 부친이 다시 복작되어 서울로 돌아왔고 그도 음보로 잡직에 올라 정부의 기술연구에 참여하게 되었다
차츰 나라에 세운 공이 크게 드러나 벼슬이 영원군수를 거쳐 숙종 4 년에는 광주목사에 이르렀으나 병으로 사직하고 말년에도 기술연구에 몰두 하였다
일찌기 현종 5년 왕명으로 측우기 혼천의를 제작하였는데 혼천의 속에 회전지구의를 넣어 지동설을 입증해 보였다.
또 숙종 1년 우리나라 천문지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발굴하였고
13년에 수정 복원하여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숙종 5년에 수차를 개발하여 관개에 이용하였고 숙종 13년 왕명으로 선기옥형 제작 책임자로 임명 되어 2년 만에 완성 시키기도 했다
이민철의 묘는 충청남도 부여군이 향토유적으로 지정 하였다.
이민철 관련 학술논문이 1997 년 1월 한국과학사학회에서 발표 되었다. 저자는 남문현 한영호며 한국과학사학회지 19권 1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