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결실을 맺으려면
“오래 엎드린 새는 반드시 높이 날고, 앞서 핀 꽃은 홀로 먼저 지느니라. 이를 알면 발 헛디딜 근심을 면하고, 조급한 마음을 덜 수 있으리라” ~ ‘채근담(菜根譚)’ 중에서.
세상 것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성인(聖人)이 되는데 삶의 초점을 맞추면, 세상에서 남보다 앞서는 데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니 발을 헛디딜 근심을 면할 수가 있으며 세상 일로 인해 조급한 마음을 버릴 수가 있다.
성인(聖人)의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진리이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섭리(攝理)에 순종해야하며, 마음을 갈고 닦는 수양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 잠언 4장23절
백강 이경여 선생은 병자호란으로 인한 피폐함을 극복하고자 나라에 올린 재변을 이겨내는데 힘써야할 건의 사항 중의 하나로 다음과 같이 ‘마음의 수양’을 말씀하였다.
" 대개 본심이 지켜지지 않으면 덥지 않아도 답답하고 춥지 않아도 떨리며 미워할 것이 없어도 노엽고 좋아할 것이 없어도 기쁜 법이니, 이 때문에 군자에게는 그 마음을 바로 하는 것보다 중대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君子莫大於正其心). 이 마음이 바로 잡히고 나면 덥더라도 답답하지 않고 춥더라도 떨리지 않으며 기뻐할 만해야 기뻐하고 노여울 만해야 노여우니, 주자(朱子)가 이른바 대 근본(大根本)이라는 것이 이것입니다.
함양하는 방도도 불씨(佛氏)처럼 면벽(面壁)하거나 도가(道家)처럼 청정(淸淨)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발동되기 전에 지키고 발동된 뒤에 살피며 미리 기필(期必)하지 말고 잊지도 말아 보존해 마지않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텅 비고 밝은 한 조각 마음이 그 속에 거두어져 있어 북돋는 것이 깊고 두터우며 이(理)가 밝고 의(義)가 정(精)하여 경계하고 삼가고 두렵게 여기는 것이 잠시도 떠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근본이 이미 굳어져서 어느 것을 취하여도 본원(本源)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지키고 버리는 사이에서 주재(主宰)하는 것이 없으면 마음이 이미 없는 것이니, 어찌 외물(外物)에 대응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인(仁)을 숙련하는 공부가 어찌 일조일석에 되는 것이겠습니까.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천덕(天德)·왕도(王道)는 그 요체가 홀로 있을 때에 삼가는데 있을 뿐이다’고 하였습니다(程子以爲: “天德 王道, 其要只在槿獨”). 홀로 있을 때를 삼가지 않아서 유암(幽暗)하고 은미(隱微)한 데에 문득 간단(間斷)되는 곳이 있다면 어떻게 날로 고명(高明)한데에 오르겠습니까.
당 태종(唐太宗)이 일찍이 ‘임금의 한마음(一心)은 공격을 많이 받는다. 조금이라도 게을리 하여 그 하나만이라도 받아들여지는 날이면 위망(危亡)이 따른다.’ 하였는데, 이는 대개 그 자성(資性)이 밝고 트여 이 마음이 희미한 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인(聖人)의 극치(極致)라는 것도 결국은 이길 외에 따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 중주(中主)의 소강(少康)도 이를 빌려서 다스렸으니, 다니기가 험한 산길에서 애쓰고 초목이 무성한 곳에서 배회하는 것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
~ 효종 4년(1653년) 백강 이경여 선생의 재변을 이겨내는데 힘써야할 21항의 상차문 중 에서
백강 선생의 말씀을 줄이면 성인(聖人)의 극치는 결국 ‘마음의 수양’ 특히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는 데(槿獨)에 있다고 하겠다.
또한 유념해야할 바는, 우리는 인간이 생각하는 때가 아닌 ‘하나님의 때’를 기대하고 그 때가 올 것을 믿고 하나님이 주신 푯대를 향해 힘껏 노력하며 살아갈 때에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훌륭한 결실을 맺을 수 있다. 그 때에 우리도 성인(聖人)이 되는 결실조차도 맺을 수가 있다. ‘하나님의 때'는 비록 늦을지라도 확실하게 다가온다.
“이 묵시(vision)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이것이 지금 당장 이루어질 것은 아니지만 이루어질 때가 정해져 있으니 그 때가 분명히 올 것이며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려라. 지체되지 않고 그 때가 올 것이다” ~ 하박국 2장3절
2020. 2. 9. 이 주 관